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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칼럼

그리스도의 고난의 자취를 따라

   그리스도인을 쉬운 말로 하면, ‘작은 예수’ 또는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생각과 행동을 닮아 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리스도의 향취가 풍겨져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자취를 따라 가려면 고난은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빌립보서 1:29에서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오직 평탄하고 형통한 복만을 약속한 것이 아니라, 고난도 예고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난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고, 고난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견딘다면, 그 후에는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유익은 고난을 통해 회개하고 죄를 멀리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1,2에서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비유의 말씀 중에서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에서 탕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사랑을 잘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받아가지고, 먼 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하게 살며, 있는 것 다 허비하고 심한 고난에 처했을 때에, 그가 그 때에 마음을 스스로 돌이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서 용서를 구할 마음을 갖게 됩니다. “스스로 돌이켜”라는 말씀을 NIV 영어 성경으로 보니까, “he came to his senses”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제 정신이 돌아와서”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고난이 제 정신을 차리게 하고 죄를 회개하고 죄를 그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시119:71에서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유익은 하나님의 위로가 넘치게 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후1:5)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고후1: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의 뜻대로 살아보려고 하다가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것입니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시34:19)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벧전2:20) 아무쪼록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죄로 인하여 받는 고난이 아니라, 의를 위하여 받는 고난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는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며, 주의 위로도 넘친다고 하나님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음을 믿고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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