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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칼럼

노아의 때 2

마태복음 24:36-44

 

   노아의 때와 같이 성적으로 타락하고 포악한 사회는 역사 속에 많이 등장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성적으로 타락하고 패역하여 멸망을 당했습니다. 로마의 고대 도시 폼페이는 로마 귀족들의 휴양지로 번영한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에는 검투가 흥행하여 사람이 맹수와 피를 흘리며 싸우는 장면을 환호했고, 음란한 성행위와 동성애등 성적으로 난잡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베수비오 화산의 거대한 폭발과 함께 사라진 도시가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촌도 성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하고 패역해져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성경은 심판의 날을 속단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24:36,37)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깨어있는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24:42-44)

 

   세상 끝이 되었다고 방종하며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은 밭을 갈다가 또는 맷돌질 하다가 종말의 때를 맞이한다고 말씀합니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마24:40,41)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가 일상생활을 성실히 하는 중에 휴거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992년 10월28일에 주님이 재림한다고 시한부종말을 떠들었던 다미선교회는 그날 교회에 모여서 흰옷을 입고 광란의 예배를 드렸지만 주님은 오시기 않았습니다. 이런 식의 신앙은 매우 비성경적이고 잘못된 것입니다. 깨어있는 신앙은 항상 성령의 기름준비를 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성경적인 “깨어있는 신앙”입니다. 성령의 기름이 부어지는 통로는 예배입니다. 평소 예배생활을 잘 하고, 말씀과 기도와 찬송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고 “깨어있는 신앙”이요, 종말의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자세인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과 직장과 자기의 맡은바 일을 잘 감당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여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 중에는 주의 재림이 가깝다하여 무위도식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사도 바울은 이들을 교훈할 목적으로 장막 짓는 일을 하면서 목회를 했고 성도들에게 나를 본받으라고 말씀했습니다.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살후3:8,9) 에덴동산에도 일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2:15 "경작하다"는 히브리어 “아바드”라는 단어는 "예배"라는 의미로 발전합니다. 예배의 삶과 수고해서 얻는 소득으로 생활하며 감사는 자가 종말의 때에 “깨어있는 신앙”으로 살아가는 자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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