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 중에서 죄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여기서 ‘죄’라는 헬라어 원어의 의미는 “ojfeivlhma”(옵헤일레마)라는 단어가 쓰였는데, 그 뜻은 “빚”이라는 의미로 많이 쓰이는 단어입니다. 그런 의미로 볼 때에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8장21절 이하에서 용서에 대한 말씀을 가르치실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이야기에서 사용된 ‘빚’이라는 단어가 같은 의미이고, 오늘 죄에 대한 기도의 가르침을 풀어갈 수 있는 중요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마태복음 18장21절 이하의 말씀은 베드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주어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하는 것에 대해 예수님께서 답변해주시는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베드로는 큰 선심을 써서 일곱 번까지 용서하면 되겠습니까? 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일만 달란트 빚진 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도저히 갚을 길이 없는 일만 달란트 빚진 자를 불쌍히 여겨 주인이 일만 달란트라는 큰돈을 탕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종이 길에서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만나자, 멱살을 잡고 빚을 갚으라고 촉구를 하고 그 빚을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전해들은 빚을 탕감해준 주인이 그 종을 괘심하게 여겨 불러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그리고는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으라 하고 옥에 가두었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에 나오는 데나리온은 하루 품삯인데 비해 달란트는 육천 데나리온에 해당됩니다. 일만 달란트는 도저히 인간적으로 갚을 수 없는 빚을 뜻합니다. 일만 달란트에 비해 백 데나리온은 아주 작은 것이지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는 일만 달란트의 빚을 완전히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떠한 죄인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의 공로를 믿으면 죄사함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공로로 죄에서 구원받은 자로서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하는 것은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큰 은혜는 생각지 못하고,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받은 상처만을 크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취할 행동이 아닌 것입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받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취해야 하는 중요한 덕목인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주기도를 통해 가르쳐주시는 용서에 대한 것을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루이스 스미디스’가 쓴 「용서의 미학」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용서는 미움의 포로 된 나를 해방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하루 종일 내게 상처 주었던 사람을 떠올리며 몇 번이고 다시 상처를 받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상한 감정의 자유함을 얻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용서는 멈춰있는 당신의 삶을 다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사실 용서해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용서는 죄로부터 자유해지는 길이며, 마귀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강력한 무기요, 죄의 독소를 해독하는 해독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죄에 대한 문제를 잘 처리하면서 살아야 신앙이 병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면서 튼튼하게 자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용서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지만, 용서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자가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용서의 진정한 본을 보여주신 예수님은 자신을 미워하고 저주하고 십자가에 못박는 자들을 향해서 용서의 기도를 하셨습니다(눅23:34). 예수님을 따라가는 작은 예수인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처럼 용서하는 삶을 실천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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