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4:7-15
오늘 본문 말씀 중에서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8)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처럼 사랑은 기독교의 중심에 있는 덕목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4,35)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성경 원어에는 “άγάπη”(아가페)라는 단어가 쓰였는데, 이는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뜻합니다. 이것은 진정 하나님의 사랑을 뜻하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아가페의 사랑을 완벽하게 보여준 사건입니다. 인간적인 사랑의 수준으로는 교회공동체가 제대로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뜻을 위해 헌신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고 난리를 쳐도 교회에 잡음만 내고 교회를 분열시키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분명한 교훈을 받을 수 있는 말씀이 요한복음 13:36-38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새 계명을 말씀하시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을 때, 바로 이어서 이러한 말씀이 나옵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의 인간적인 사랑과 결심은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후에 베드로가 성령을 받고 나서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아가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본질적으로 다른 하늘에 속한 자들이며,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사랑은 한 가지 밖에는 없습니다. 오직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헬라어에는 남녀 간의 사랑을 뜻하는 “에로스”와 우정을 뜻하는 “필레오”로 사랑의 종류를 나눕니다. 아가페나 에로스나 필레오나 다 사랑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의 사랑은 오직 아가페의 사랑만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아가페의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주님의 몸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4:10에서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는 말씀을 하시며, 분명한 사랑의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교회가 지향해야하고, 이 사랑으로만이 교회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교회는 인간적인 노력으로는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로 세워질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만 가능하며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일서 4:13에서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주님의 제자가 되고 교회다운 교회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성령이 부어지는 교회가 되도록 해야 하며,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의 심령에 흘러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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