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1-25
사명을 잃고 낙심과 좌절에 빠져서 옛 생활로 돌아간 베드로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에 걸쳐 말씀하셨는데, 첫 번째는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이때 베드로는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두 번째는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이때 베드로는 첫 번째 대답과 동일하게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세 번째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때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동일한 질문을 받자 근심어린 말로 대답합니다.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지어주신 이름 “베드로야”라고 부르시지 않으시고,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부르셨습니다.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바람에 이리 저리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뜻을 지닌 “시몬”이 베드로의 본래 모습임을 일깨우시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갈 때에 “베드로”가 될 수 있음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예수께서 세 번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신 후에, 이어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이제는 베드로가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의지와 결심과 능력으로는 주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을 받으라는 말씀 앞에는 “오직”이라는 단어가 같이 나옵니다.(행1:8; 엡5:18)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성령님을 오시게 하는 통로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기도하게 되고,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기에 주님을 더욱 의지하고 구하게 됩니다. 이러할 때 성령께서 그에게 임재하십니다. 성령께서는 가난한 심령에 임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상한 심령으로 주의 은혜를 바라는 자에게 임하십니다. 스가랴 4:6은 말씀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주의 일을 감당하려면, 오직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인간적인 생각과 노력은 주님과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에 매여서 살아가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며 살아갈 때에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을 세상 사람이 바라볼 때는 놀라운 사람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처럼 앉은뱅이를 일으켜 걷게 했고, 죽은 자도 살렸습니다. 사도행전 5:15에서는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라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건, 성령 충만한 자 속에서 성령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목양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가페 사랑 (0) | 2017.02.23 |
---|---|
오직 주의 사랑에 매어 2 (0) | 2017.02.04 |
메리 크리스마스 (1) | 2016.12.31 |
금보다 더 귀한 믿음 (0) | 2016.12.03 |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받은 자 (0) | 2016.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