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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칼럼

전도 열정

누가복음 15:8-10


하나님을 사랑하고 전도하는 일은, 생각해보고 계산해 봐서, 이것이 이득이 되냐 안 되냐를 따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이득이 되냐 손해가 되냐를 따지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12:15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사도 바울은 이방인을 전도하는 일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고린도 지역에서 전도하고 구원받은 사람들로 세워진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자신의 재물뿐 아니라, 생명까지도 내어주겠다고 말씀합니다. 진정 우리의 구원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목숨 값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목숨 값이 지불되어야 구원받을 수 있을 정도로 가치가 있는 존재인가를 생각할 때, 너무나 죄송스럽고 황송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얼마나 이득이 되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는 것 자체가 너무도 기쁘고 행복하고 잔치를 열어야 할 만큼 가슴 벅찬 일이라고 하십니다.

  

영혼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심정을 잃지 않아야 신앙이 변질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냉정하고 너무 계산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러한 세대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마11:16,17) 기쁠 때는 함께 기뻐하고 슬플 때는 함께 슬퍼할 수 있는 감성이 있어야 사람다운 것입니다. 감성이 메마르면 구원받기가 참 어렵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셨다고 전해도, 그저 눈만 껌벅거리며 전혀 감동도 이해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예배의 시간, 찬양과 말씀과 기도가 있는 시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좋은 때입니다. 이러한 때에 자신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계산적으로 봤을 때는 이해가 안가고 오히려 손해가 되는 어리석은 짓으로 여겨집니다. 본문의 내용을 이렇습니다.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어느 여자가 드라크마(은전) 하나를 잃어버렸다가 찾았는데,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은 기쁨으로 인하여, 친구들과 이웃을 초대해서 잔치를 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잔치에 들어가는 비용은 열 드라크마는 족히 될 것입니다. 비용으로 생각하면, 차라리 잃어버린 드라크마 한 개를 찾지 않는 편이 나았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의 말씀은 예수께서 영혼 구원에 관한 가르침으로 하셨습니다. 그만큼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께 충만한 기쁨과 가치가 있음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나의 감성이 정상인지를 가늠해 보려면,

기쁜 일을 만났을 때 기뻐하며

슬픈 일을 만났을 때 슬퍼하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만일 어린아이처럼

조금 기쁜 일이 있어도 까르르 웃고

슬픈 일일에는 엉엉 울 수 있다면

분명 하나님이 쓰시기에

좋은 감성을 지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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