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목양칼럼

온전한 감성의 회복

마태복음 11:16-19


   침례요한이 회개를 외치며 요단강에서 침례를 줄 때에, 요한은 금식하며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습니다. 이러한 요한을 보고 종교지도자들은 귀신들린 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셔서 죄인과 세리의 집에 들어가 함께 식사하는 것을 보고는 먹기를 탐하는 자라고 비판했습니다. 예수님은 금식하느냐 안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하여 사람들이 변화되고 새로워지는 아름다운 열매들로 인하여 평가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만일 침례요한이 왜 금식하며 사람들에게 회개를 외쳤는지를 공감한다면 회개했을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왜 죄인들의 집에서 식사하고 세리의 집에서 식사하시면서 복음을 전했는지 그 심정을 알았다면, 죄인들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죄를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비판하는 자가 되지 말고, 마음 아파하는 자와 함께 울어주고,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해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비판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분석과 판단이 틀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비판하는 자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7:2은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선악 간에 판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남의 잘못에 대해서 너무 비판의 날을 세우지 말고,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품고 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그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아집니다. 이제 내가 그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복음을 전할 때 마음을 열고 들어줍니다.

  

   우리의 영성이 살아나야 우리의 감성도 제 기능을 발휘합니다. 영성은 인간의 모든 영역의 컨트럴타워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영을 통하여 우리의 전 인격을 회복하십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3은 “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영이 하나님과 깊은 교제관계에 들어가면,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십자가의 사랑을 심정으로 깨닫게 되고, 이것이 이웃사랑으로 이어지며 이웃의 슬픔과 기쁨을 공감하는 감성을 발휘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서,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를 것이라고 하시는데,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고 감성이 메마르고 육신의 쾌락을 좇는 세대를 말씀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가 이러한 것이 절정이 이른 세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듭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조차도 겉모습만 그럴듯하지 영성이 없고 종교생활만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4-17에 있는 말씀처럼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심정를 품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고 자하는 심정으로 살아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4:1,2에서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하십니다.

'목양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종이 능력이다  (0) 2016.05.29
거룩이 능력이다  (0) 2016.05.29
하나님의 장막 2  (0) 2016.05.08
하나님의 장막 1  (0) 2016.05.08
하나님의 비밀병기  (0) 2016.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