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9-11
하늘영광 큐티밴드에 글을 올리기 위해, 말씀을 묵상하다가 눈물을 흘리는 때가 많아졌습니다. 이제 가을에 접어든 나이 때문인지, 하나님을 더욱 알아갈수록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느끼게 되어서인지, 아마도 두 가지 다 영향이 있을 것입니다. 나 혼자 큐티하고 마치는 것보다도 글을 올려야 하는 부담감을 가지고 큐티하다 보니, 더 깊이 묵상하게 되고 더 깊이 성경 연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큐티 시간이 한 시간 이상 갈 때가 많이 있는데, 말씀에 깊이 빠지는 이 시간이야말로 하루의 시간 중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예수님이 두 팔을 벌리고 십자가에 매달리신 것을 가만히 묵상하게 됩니다. 두 팔을 벌린다는 것은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이고,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처분에 따른다는 것이고,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대적에게 두 팔을 벌리고, 세상에서 가장 처참한 십자가 형틀에서 처형을 당하셨습니다. 어쩌면 나도 예수님처럼 두 팔을 벌리고 어떻게 나를 쓰시든지 나를 하나님께 맡기는 훈련 중에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에 매인 사신이 되어, 두 팔을 벌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곳곳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선교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서세계 곳곳에 교회가 세워졌으며, 신약성경의 13권을 기록할 만큼 위대하게 쓰임받은 사도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을 믿지 않을 때 성경에 대한 오해로 인하여 교회를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성경에 대해서는 박식했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읽지 못했던 것입니다. 성경을 인간적인 관점에서 연구하면 전혀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해석을 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반드시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믿고 사도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청년 바울은 교회를 박해하는데 열심이었습니다. 신앙심이 투철하고 성령 충만한 집사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분노하여 이를 갈고 돌로 쳐서 스데반을 죽일 때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그가 변하여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사도가 된 것은 놀라운 변화이며,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고 그 자리에 거꾸러져서, 자신의 인생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의 상황은 수많은 안티기독교인들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단의 활동과 윤리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목사들과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 교회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나라에는 깨어 기도하며 주의 사명을 감당하는 목사와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처럼 세상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들로 인하여 한국교회와 이 나라를 지켜주시고, 안티들이 변하여 사도 바울과 같은 인물이 되는 사람들도 생겨날 줄 믿습니다. 예수님처럼 “주여 저들을 용서하옵소서. 저들이 하는 것을 저들이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기도하며, 하늘을 향하여 기도하는 간절한 간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