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를 녹이는 자
현대인들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스트레스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누적되는 피곤, 무언가 열심히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강박증, 왕따, 등수로 평가받는 것에 대한 상실감 내지는 압박감, 연애인들 같은 경우에는 인기 관리를 위해서 팬들을 항상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 스트레스와 때로는 악플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스트레스를 전혀 안 받고 살 수는 없습니다. 적절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건강학데 사는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수족관의 물고기를 운반할 때에 먼 거리를 가게 되면 물고기들이 생기를 잃고 죽기도 하는데, 그 수족관에 물고기를 잡아먹을 수 있는 메기 같은 것을 넣어놓으면, 물고기들이 메기를 피해 다니느라 물고기가 생생하게 유지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도한 스트레스가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삶입니다. 욕을 받아도 욕하지 않고, 섬기고, 봉사하고,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라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이지요. 마치 주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양을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신 표현과 같은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는 운명과도 같은 존재이므로 스트레스를 녹여야 살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낙심하고 좌절하고 쓰러진다든지, 아니면 명목만 그리스도인이지 그리스도인의 삶은 없는 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성경본문 로마서 8:35-37에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살 충동이 일어날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있는 것을 말씀하고 있으며, 모든 것을 이제는 포기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것들을 넉넉히 이긴다고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말씀과 우리의 삶과는 맞지 않는 것처럼 생각이 되는 것일까요?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스트레스이든지 넉넉히 이긴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어찌보면 세상에서 조폭과 같이 악한 자들은 악한 일들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스트레스도 안 받고 세상의 돈과 즐거움을 누리다가 죽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조폭을 미화한 영화들이 인기를 누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찌질하게 살지 않고 화끈하게 살고 죽는 것이 멋있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조폭처럼 악하게 살지 말라는 것이 주님의 말씀인데,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을 선하게 살면서도 스트레스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적용이 되면 스트레스를 완화할 수 있는 것은 한적한 곳에서 잘 쉬는 것입니다. 잠을 푹 잔다든지,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는 것도 좋고, 음악을 감상하거나, 한적한 바다나 산과 들에서 자연을 감상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한적한 곳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편하게 쉬어야 합니다. 사람이 많고 복잡한 곳으로 가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더 쌓일 수 있습니다. 게임을 하거나 숙제를 싸가지고 가서 숙제를 하면 안 됩니다. 한적한 곳, 사람이 없는 곳에 가서 그냥 쉬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에 우리 몸 스스로가 회복의 센서가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가면 몸의 상태가 굉장히 호전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가복음 6:31에 예수께서 전도 사역으로 인하여 피곤해진 제자들에게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굉장히 성경적이고도 일반적인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신체의 원기 회복법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적용이 되는 스트레스를 녹일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을 소개하자면, 로마서 8:28과 37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연애하는 기분으로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냥 아무 조건없이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렇게 사랑하다가 죽는다 해도 좋다는 심정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사랑의 심정으로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죄 없으신 어린양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시고 피 흘려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기를 바랍니다. 아담이 하와에게 “너는 내 뼈 중의 뼈고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하며 노래했듯이, 주님은 우리를 향해서 이렇게 노래하십니다. “너는 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내 사랑하는 자요 나의 모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