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나
고린도후서 5:14-17
만일 당신은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이 질문은 어쩌면 불가능한 것을 질문한다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냥 바램으로 그치는 질문이라고 여기겠죠. 그러나 만일 당신이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재벌의 집에서 태어나기를 원한다든지, 아니면 외모가 예쁜 연예인으로 태어난다든지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다시 태어나도 언제나 만족하지 못하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인생은 어차피 불공평하고 그 무엇을 얻는다 해도 거기서 만족과 행복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만족과 행복을 얻으려면 세상의 불공평함을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삶을 가치있게 여기고 최선을 다해 살아갈 때에 만족과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더라도, 자기의 부족함과 연약함 때문에 좌절하고 절망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처지와 삶을 자족하려다보면, 어느새 자신이 그저 내 운명이거니 하며, 스스로 주저앉는 운명론자가 되어버린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감히 여러분에게 운명론자가 되지 않더라도,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이 있음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저의 고백이기도 하고, 오늘 성경이 말씀해주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우리는 지금의 삶에서 진정 새로운 나로 태어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우리를 사랑하셔서 육신의 몸을 가지시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은 죄가 많은 이 세상과 죄인들을 위해 온갖 수고와 헌신을 다 바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수치와 멸시와 천대와 고통과 저주와 사망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 없으신 하나님이시기에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고,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면, 수치와 멸시와 천대와 고통과 저주와 사망이 사라집니다. 그야말로 새로운 나를 경험하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새로운 나를 실제로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보다도 세상의 것들을 따라서 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5:17의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씀하는 헬라어 원어는 “kainh; ktivsi"”인데, 영어로는 “new creature”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되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16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사람이,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과 기도와 찬양과 예배는 나를 날마다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세상의 즐거움과 세상의 아름다움에 현혹되지 맙시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마음을 부패하게 하고 병들게 합니다. 진정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나를 가치있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만들어가기를 원한다면, 나를 새롭게 창조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과 어리석음과 연약함을 해결해주시고, 날마다 새 힘을 주시고 새롭게 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살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이 흘리신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와 성령의 능력을 힘입으면 새로운 나를 날마다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