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이 무뎌진 세대
마태복음 11:16-19
비판하는 자가 되지 말고, 마음 아파하는 친구에게는 함께 울어주고, 기쁜 일이 있는 친구는 함께 기뻐하고 박수쳐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분석과 비판이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비판하는 자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비판하는 자는 도로 비판을 받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오직 모든 선악 간에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을 품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공감하고 친구가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면 이러한 친구들은 구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아집니다. 이제 이 친구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복음의 말씀을 들어줄 마음의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만고불변의 법칙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려면 죄인들과도 세리들과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마음을 공감해주는 자세가 먼저 필요합니다.
먼저는 영성에서 온전한 감성이 발휘됩니다. 영성은 인간의 컨트럴타워 역할을 합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을 통해 우리의 전 인격을 회복시키십니다. 우리의 영이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관계에 들어가면,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십자가의 사랑을 심정으로 깨닫게 되고, 이것이 이웃 사랑으로 이어지며 이웃의 슬픔과 기쁨을 공감하는 감성으로 발휘됩니다.
둘째는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은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른다고 말씀하며, 돈을 사랑하고 감성이 메마르고 육신의 쾌락을 쫓는 세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세대가 너무나 이러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겉모습만 그럴듯하고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깊이 묵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에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에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 하늘로부터 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온전하기를 바라십니다.(살전5:23) 우리의 촉이 무뎌지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우리의 영이 온전해야 합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영의 기능이 죽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 받고 영의 기능이 살아납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 고린도전서 3:16의 말씀에서도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6:63의 말씀에서도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과 기도와 찬송 가운데 부어주시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이 생기를 얻고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속에서 성령과 우리의 영이 하나가 되어 혼의 기능인 지성과 감성의 의지가 온전하게 발휘됩니다. 이렇게 될 때에 하나님의 심정으로 사람들의 심정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