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늘영광 2019. 5. 12. 20:21

고린도전서 13:4-7


   톨스토이의 단편선 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에서 ‘모든 사람은 자신을 살피는 마음에 의하여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서 살아가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사람이 사는 세상을 더욱 가치 있고 의미 있고 아름답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하고 있는 단어가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노래 속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노랫말이 되지를 않을 정도입니다. 중요하고 귀한 것은 그것에 대한 유사품(일명 짝퉁)도 많듯이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에 대한 개념도 오리지널이 아닌 짝퉁이나 모조품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진정한 사랑의 개념을 알려면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요? 오늘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이 ‘사랑’에 대한 바른 개념을 여러분에게 알게 해줄 것입니다.

  

   사랑의 속성 첫 번째는 ‘오래 참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오래참지를 못합니다. 혼전 순결을 지키지 못한 부부가 이혼율이 더 높다는 연구보고가 있습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결혼에 대한 기대감과 만족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첫째로 오래참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참아주고 이해해주고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랑이 서로를 존중할 수 있고 서로에 대한 만족도를 높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 자녀를 양육할 때도 오래 참을 수 있는 성품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부부가 행복하게 살려면 오래 참아야 합니다. 상대의 성품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참아주고 나도 부족한 자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속에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은 ‘온유’합니다. 온유라는 말은 결코 약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강하고 힘으로 억압할 수 있으나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였다고 말씀합니다(민12:3). 마태복음 5:5에서는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온유하신 분이라고 말씀합니다(마11:29). 예수님은 아무 잘못도 없으나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구를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용서하는 기도를 드리셨던 것입니다. 사랑은 온유합니다.

  

   또한,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랑’이라는 단어 대신에 ‘예수님’이라는 단어로 대치해서 읽어도 딱 들어맞습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단어 대신에 ‘자기 이름’을 넣고 읽어 보면 너무나 어색하고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사랑의 성품과는 멀어져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 십자가 밑에서 죄의 성품을 죽이고 십자가의 사랑을 공급받는 길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여정을 아름답고 복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