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에덴이여!
요한복음 16:24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시고자 했던 에덴의 기쁨을 회복하러 오셨습니다. “에덴”은 히브리어로 “지극한 기쁨”을 뜻합니다. 큰 기쁨,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에덴에서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본래 사람이 누려야할 복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범죄 함으로 말미암아 에덴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실낙원에 살게 된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기쁨 대신에 세상에서 기쁨을 얻고자 합니다. 가인의 후손들이 세상적인 기쁨을 얻고자 하는 것을 보면, 악기를 만들어 내고 음악을 합니다.(창4:21) 아내를 여려 명두고 삽니다.(창4:19.23) 사람에게 필요한 기계를 만들어서 살아갑니다.(창4:22) 지금도 세상적인 기쁨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의 행태는 비슷합니다. 세상에서 하는 음악이 다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을 악하게 하고 음란하게 하고 죄에 물들게 하는 음악을 하든지, 여자들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음행을 하고 아내를 여러 명 두든지, 우리나라는 일부일처제법이라서 공식적으로는 아내를 여러 명 둘 수 없어서 아내 외에 애인들을 두는 식입니다. 그리고 기계를 사용하는 것이 다 안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은 노동의 수고를 줄이고 생산량을 높이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방법으로 기계화를 합니다. 앞으로는 인공지능 로봇이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시대도 올 것입니다.
그렇다면, 에덴에서 사람들이 누렸던 지극한 기쁨은 무엇이었을까요? 이것을 회복해야 세상이 주는 기쁨을 따라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께서는 사람 속에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2:7) 그리고 하나님께서 에덴에 오셔서 하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살았습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한 기쁨의 회복을 위한 조건입니다. 에덴의 지극한 기쁨은 사람 속에 성령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회복하려면, 종교행위로는 되지 않습니다. 말씀과 기도와 찬송을 진정 마음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성품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드려야 합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곳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십니다.
에덴에는 사랑의 교제와 평화가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진심으로 사랑했고, 동물들과도 평화롭게 지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이루어질 것에 대해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이사야11:-9)
그리고 에덴에는 각종 나무의 실과가 충만했습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먹어야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커피열매와 각종 사람을 기쁘게 하는 과일들이 넘쳤습니다. 음식을 잘 먹는 것에도 기쁨이 있습니다. 좋은 음식을 잘 만들어서 대접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시려고 했던 기쁨을 회복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