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4(일용할 양식)
마태복음 6:1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시면서 그 기도의 내용을 통해 신앙의 가장 핵심적인 것들을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먼저 하나님의 백성들이 땅엣 것에 매여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며 살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성도의 본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인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는 일에 함께 동참하기를 촉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창조주시오 만왕의 왕되시는 하나님의 관심은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말씀이 성경 전체에 걸쳐 말씀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이 당연히 하나님의 관심과 보조를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과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산다면 하나님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육신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의 삶의 필요와 문제들에 대해서 전혀 신경을 안 쓰고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사는 사람에게 삶의 필요를 채워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오늘 본문 마태복음 6:11의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에 대한 기도의 내용은 우리의 삶의 필요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적인 것 뿐 아니라 육적인 것에 관해서도 세심하게 배려해주십니다.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있으므로 갖게 되는 연약함을 우리 주님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4:15,16은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우리의 삶에 있어서 필요한 것들을 기도로 구하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겠다고 했지, 욕심을 채워주시겠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에 관하여 야고보서 4:3에서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에 대한 말씀하면 생각나는 성경의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광야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매일의 양식인 만나를 먹은 일입니다. 광야에서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먹을 것을 제대로 얻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매일 새벽마다 이슬이 땅에 내릴 때에 만나도 함께 내려주셨습니다(출16:14).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며 그 맛은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다고 합니다(민11:7,8). 만나는 매일 먹을 만큼만 거두어 먹어야 했습니다. 만일 많이 거두어서 다음 날까지 남겨두면 벌레가 나고 냄새가 나서 먹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안식일 전 날에는 두 배로 거두고 그 다음 날 안식일에 먹어도 음식이 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일용할 양식에 대한 것을 만나를 주심으로 훈련시키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인색하게 주시는 분이 아니라 풍성하게 주시는 분이십니다(요10:10; 빌4:19).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땅에서 나는 풍성한 것들을 풍족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가 문제입니다. 사람이 풍족하게 되면 하나님을 잊고 세상과 물질에 의지하게 된다는 것이지요(신8:11-14). 물질이 하나님인 양 섬기게 되는 엄청난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만나를 통해 매일 매일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은혜를 체험하는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기도를 통해 일용할 양식에 대한 기도를 가르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물질에 대한 청지기적 삶을 가르치기 위함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