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소통에도 차원이 있다

하늘영광 2018. 6. 10. 07:28

시편 19:1-14

 

  “소통”은 한자로 “疏通”, 영어로는 “communication”이라고 합니다. “소통”의 뜻을 찾아보면,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소통이 잘 되려면, 첫째로 마음에 있는 생각을 언어로 잘 전달할 수 있어야 하고, 듣는 자는 말하는 이의 말을 잘 경청하고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소통이 참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언어구사력이 떨어지거나, 청중이 단어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또는 언어만으로는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과 그 마음의 있는 생각을 전달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몸짓을 해가며 소통을 하기도 하고,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거나, 또는 파워포인트라는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프레젠테이션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소통의 가장 큰 장벽은 세계의 언어가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인공지능 통역기가 나오면, 각 나라 어느 곳에 가서도 의사소통이 될 것으로 기대하기도 합니다. 물론 깊은 대화는 어렵겠지만, 일상에 필요한 의사소통은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소통에 있어서 조금 높은 차원의 도구는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이라는 멜로디에 감성과 생각이 듣는 이의 마음에 이미지 형식으로 다가옵니다. 클래식을 듣든지, 가요나 팝송이나 혹은 다른 나라 언어로 된 노래를 들어보면 그 노래를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느낌이 전달됩니다. 물론 가사를 알면 그 노래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생각과 느낌을 더 잘 알게 되겠지요. 그리고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 부르면 감동이 더해져서, 그 음악이 그 사람의 일생의 어떠한 전환점을 주기도 합니다. 아침에 창문 밖의 나무에 앉아서 지저귀는 새들의 지저귐에도 저들만의 어떠한 소통이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이것도 음악이라는 도구로 소통하는 일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동물들의 세계에서 두드러진 현상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음악이라는 형식으로 소통하는 것은 가장 기초적이며 원시적인 소통방식이며, 음악을 잘 활용하면 모든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좋은 도구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음악은 감정과 생각과 바라는 정신세계를 담아서 전달할 수 있는 놀라운 도구입니다. 그러나 음악이 이러한 놀라운 능력이 있어도, 언어가 일상생활에 필요한 세세한 것들을 구사하는 데는 훨씬 유용할 것입니다.

  

   오늘 시편 19편 말씀 중에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만물에는 소통이 이루어지도록 설계해 놓으셨습니다. 예를 들면, 낮이 되고 밤이 되는 것, 계절이 바뀌는 것, 철새들이 때를 따라 이동하는 것, 봄이 되면 3월경에 목련, 개나리, 철죽 꽃이 피고, 4월경에는 벚꽃이 피고, 5월경에는 장미꽃이 피는 것을 꽃들은 압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도 아시고 우리의 마음의 묵상과 입의 말을 열납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의 세계에는 말이 없어도 소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세계 넘어의 영의 세계를 알고 소통의 또 다른 차원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